- 한국의 ‘설’과 중국의 ‘춘절(春节)’. 달의 주기를 따라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이 두 명절은 유교적 문화권이라는 거대한 자장(磁場) 안에서 태동했으나, 각기 다른 역사적 토양 위에서 서로 다른 빛깔의 꽃을 피워냈다.
[한중연합일보 이창호 발행인] 입춘대길(立春大吉)의 묵향이 채 가시기도 전, 동아시아의 대지는 다시 한번 거대한 이동의 물결에 요동친다.
한국의 ‘설’과 중국의 ‘춘절(春节)’. 달의 주기를 따라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이 두 명절은 유교적 문화권이라는 거대한 자장(磁場) 안에서 태동했으나, 각기 다른 역사적 토양 위에서 서로 다른 빛깔의 꽃을 피워냈다.
단순히 ‘쉬는 날’을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가족 공동체의 원형을 확인하는 이 두 명절의 이면에는 어떤 문화적 기호가 숨겨져 있을까.
● 고요한 성찰의 시간, 한국의 ‘설’
한국의 설은 ‘삼가다’라는 뜻의 ‘사리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새해의 첫날을 그저 들뜬 축제로 맞이하기보다, 몸가짐을 정돈하고 경거망동을 삼가며 한 해의 운수를 경건히 맞이하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한국 설의 핵심은 ‘수직적 결합’과 ‘내면적 위로’에 있다.
이른 아침, 정갈하게 차려낸 차례상 앞에서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신적 가교'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올리는 세배는 단순한 용돈 벌이가 아닌, 세대 간의 내밀한 축복이자 질서의 확인이다.
음식에서도 그 성격이 드러난다. 흰 떡국 한 그릇은 지난날의 묵은 때를 벗고 백지 위에 새로운 일기를 써 내려가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의 설은 왁자지껄한 소음보다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는 낮은 목소리의 온기로 채워진다.
이는 농경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가문의 가풍을 중시했던 한국 특유의 유교 문화가 투영된 결과다.
● 거대한 생명력의 폭발, 중국의 ‘춘절’
반면 중국의 춘절은 ‘수평적 확장’과 ‘역동적 환희’의 무대다. 고대 전설 속 괴물 ‘년(年)’을 쫓아내기 위해 붉은 종이를 붙이고 폭죽을 터뜨리던 풍습에서 기원한 만큼, 춘절의 기운은 강렬하고 뜨겁다.
중국인들에게 춘절은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선언이다.
집집마다 붙이는 ‘춘련(春联)’과 거리를 수놓는 홍등(紅燈)은 복(福)이 들어오길 바라는 적극적인 염원의 산물이다.
한국의 설이 차분한 묵조(默照)의 시간이라면, 중국의 춘절은 온 세상이 붉게 타오르는 축제의 시간이다.
특히 춘절 음식인 ‘교자(饺子)’는 그 형태가 옛 화폐인 원보(元寶)를 닮아 부(富)를 기원하는 세속적이고도 솔직한 욕망을 담고 있다.
가족이 모여 만두를 빚으며 밤을 지새우는 ‘수세(守歲)’ 풍습은 거대한 대륙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확인하고 서로의 생존을 축하하는 강인한 생명력의 표출이기도 하다.
● 자본주의와 만난 전통, 그리고 변치 않는 가치
21세기에 들어서며 '설과 춘절'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명절 증후군’과 중국의 ‘춘운(春運, 춘절 대이동)’은 현대 사회가 전통 명절에 부과한 피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작금 핵가족화를 넘어 1인 가구가 보편화된 시대, "가족이 반드시 모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설과 춘절을 기다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속도와 효율만이 강조되는 무한 경쟁의 궤도에서 잠시 내려와, 나의 뿌리를 확인하고 타인(가족)의 안부를 묻는 '인간적인 시간'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떡국 한 그릇과 중국의 교자 한 접시는 결국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위로 말이다.
설과 춘절은 단순한 역법상의 날짜가 아니다. 그것은 '억겁의 세월' 동안 동아시아인의 DNA에 각인된 '회귀(回歸)'의 본능이며, 차가운 겨울을 뚫고 올라오는 봄의 전령사다.
형상은 다르되 본질은 하나인 이 두 명절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BEST 뉴스
-
[한중연합일보] 한중교류촉진위원회, 광주비엔날레 ‘대만관’ 운영 결정에 “재검토 촉구”
[한중연합일보 이강문 기자] 한중교류촉진위원회가 광주비엔날레의 ‘대만관’ 운영 결정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관련 결정의 재검토를 촉구했다. 사진설명: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이 한중관계의 신뢰와 상호 존중을 강조하는 공식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양국 수교 정신과 ‘하나... -
[한중연합일보] 안중근의 동양평화와 한중일 경제공동체
[한중연합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그러나 그를 단지 총을 든 독립운동가로만 기억한다면 그의 사상과 역사적 위상을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안중근은 침략과 지배에 맞서 싸운 민족의 영웅이면서, 한·중·일 세 나라가... -
[한중연합일보] 용혜인 의원, 장관직과 의원직 중 하나를 선택하라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한국영도력연구소 대표·한중연합일보 발행인]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정치권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1990년생의 젊은 정치인, 재선 국회의원, 일하는 어머니라는 상징성은 분명 신선하다. 세대교체와 정치적 ... -
[한중연합일보] 중국 대학생 미술의 ‘찬란한 개화’…제3회 전국 대학생 미술작품전 베이징서 개막
[한중연합일보 이강문 기자] 중국 청년 미술인들의 창의성과 대학 미술교육의 성과를 한자리에서 조망하는 대규모 미술전이 베이징에서 막을 올렸다. 2026년 9월 3일 중국미술가협회(中国美术家协会), 중앙미술학원(中央美术学院), 허베이미술학원(河北美术学院)이 공동 주최한 ‘찬란한 개화(绽放·Blooming)―제... -
[이창호 칼럼] 고당 조만식의 민족관,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한중연합일보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고당 조만식 선생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실천적 민족지도자였다. 그는 민족을 관념이나 구호로만 말하지 않았다. 교육으로 사람을 일으키고, 경제적 자립으로 민족의 기반을 다지며, 정직과 절움 담대함으로 공동체를 이끌고자 했다. ... -
[이창호 칼럼] 권력자는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
[한중연합일보] 권력은 사람을 높은 곳에 세우지만, 역사는 그 사람이 높은 자리에서 무엇을 했는지 냉정하게 기록한다. 권좌에 있을 때는 수많은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박수를 보내지만, 권력이 사라진 뒤에는 오직 공과(功過)만 남는다. 게다가 권력자는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하고, 무엇보다 역사 ...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추천뉴스
정치
more +종교
more +-
[보리암의 범종] 남해군 보리암에서 종을 잡다... 마음의 울림을 찾는 순례
[한중연합일보 이창호 대기자] 남해군 금산 중턱,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솟은 시찰, 보리암(菩提庵)은 ... -
아일릿 ‘Almond Chocolate’, 日서 또 역주행 인기 돌풍!
- 오리콘·애플뮤직 등 주간 랭킹서 순위 상승 지속…어느새 차트 최상위권 넘봐 - 시간 지날수록 순위... -
알리, 데뷔 20주년 광주 콘서트 '용진' 성료 "신곡 깜짝 선공개"
[한중연합일보 이강문 기자] 가수 알리(Ali)의 데뷔 20주년 기념 광주 콘서트가 성황리에 종료됐다. ... -
에스파 ‘Whiplash’ 영어 버전, 오늘(27일) 오후 1시 공개
‘빌보드 위민 인 뮤직’서 무대 첫 선! 에스파 X 스티브 아오키 조합도 기대UP 에스파(aespa, 에스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