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니스트] 중동의 전운(戰雲)이 임계점을 넘나들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의 본토를 타격하는 ‘금기’를 깨뜨린 이후, 국제사회는 전면전의 공포 속에 놓였다. 대리 세력을 내세운 ‘그림자 전쟁’은 끝났다.
이제는 국가 대 국가의 직접 충돌이라는 거칠고 위험한 사태가 현실화되었다. 그러나 보복의 악순환 끝에 기다리는 것은 공멸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이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마주해야 할 첫 번째 문턱은 역설적이게도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 존재 부정의 정치가 부른 참극
지난 수십 년간 중동 분쟁의 본질은 ‘지정학적 이익’이 아닌 ‘존재의 부정’에 있었다. 이란의 신정 체제는 이스라엘을 ‘지우개로 지워야 할 암적 존재’로 규정하며 국가의 정체성을 수립했다. 반대로 이스라엘과 미국의 강경파들은 이란 체제의 전복(Regime Change)만을 유일한 해법으로 간주해 왔다.
상대를 대화의 파트너가 아닌, 박멸해야 할 악(惡)으로 상정하는 순간 외교는 실종된다. 지금의 충돌은 그 극단적 적대감이 낳은 필연적 결과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라는 대리인을 통한 이란의 ‘저항의 축’ 전략과, 이를 뿌리 뽑으려는 이스라엘의 ‘철권’ 응징은 서로를 궤멸시킬 수 있다는 오판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이란은 9,000만 인구를 가진 지역 강국이며, 이스라엘은 첨단 군사력과 핵 억지력을 보유한 생존 국가다. 어느 한쪽도 상대방을 완전히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없다.
◆ ‘상호 인정’은 굴복이 아닌 현실 자각이다
종전(終戰)을 위한 상호 인정은 상대의 가치관이나 체제에 동의하라는 뜻이 아니다. 상대가 엄연히 그 땅에 존재하며, 그들의 생존 본능과 안보 우려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전략적 수용’이다.
이란의 태도 변화 이란은 이스라엘의 국가적 실존을 인정하고, 이스라엘의 멸망을 촉구하는 수사(修辭)를 멈춰야 한다. 이스라엘을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 한, 이란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제적 고립과 제재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환 미국과 이스라엘 역시 이란 체제의 붕괴만을 유일한 종착지로 삼는 전략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란을 지역 안보의 한 축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정당한 안보적 이해관계를 협상 테이블 위로 올려놓아야 한다.
1970년대 미·중 관계의 해법이었던 ‘데탕트’가 가능했던 이유도 서로의 체제를 뒤엎지 않겠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중동에 필요한 것 역시 ‘중동판 헬싱키 협정’과 같은 대담한 상호 인정의 프로세스다.
◆ 미국의 역할과 이스라엘의 결단
미국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보장하는 동시에, 네타냐후 정부의 과잉 보복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중재자다. 단순히 무기를 지원하는 ‘병기창’ 역할에 머물러선 안 된다. 이란과의 비공식 채널을 가동해, 이란이 핵 개발과 대리 세력 지원을 멈추는 대가로 체제 안정을 보장받는 정교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이스라엘 또한 결단해야 한다. 군사적 승리가 곧 평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마스를 궤멸시키고 헤즈볼라를 약화시킨다 해도, 이란이라는 근원적 적대 세력과 공존의 틀을 만들지 못하면 이스라엘의 평화는 늘 ‘잠시 멈춘 포성’에 불과할 것이다. 진정한 승리는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적이 나를 공격할 명분과 실익을 없애는 데 있다.
◆ 증오를 넘어선 이성의 정치를 기대한다
역사는 증오보다 이익이, 감정보다 생존이 앞설 때 평화가 찾아왔음을 증명한다. 미·이·이란 삼각 관계의 종착역은 결국 ‘상호 인정’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청년들의 피와 국가의 파멸이다. 이제 중동의 지도자들은 자국민에게 ‘승리의 환상’ 대신 ‘공존의 현실’을 말해야 한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그 짧은 첫걸음이, 수천 년 이어온 비극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시작점이다. 이것은 용기의 문제이지, 화력의 문제가 아니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