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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시론] 지금, 나는 관대함에 서 있는가

  • 이창호 대표칼럼니스트 기자
  • 입력 2026.05.17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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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래 관대함(Generosity)이란 단순히 타인의 잘못을 너그럽게 보아넘기는 유약한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드높은 차원의 도덕적 용기이자,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지적 성찰의 결과물이다.

[대한기자신문] 오늘날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뜨거운 화두는 역설적이게도 불관용(不寬容)’이다. 광장에 모인 군중도, 모니터 뒤에 숨은 개인도 저마다의 정의를 소리 높여 외치지만, 그 어디에서도 타인을 향한 넉넉함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조금이라도 나와 생각이 다르면 ()’으로 규정하고, 작은 허물조차 용납하지 못한 채 날 선 비판을 퍼붓기 일쑤다.

 

이 거칠고 메마른 '증오의 시대'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과연 나는 관대함에 서 있는가.’

 

본래 관대함(Generosity)이란 단순히 타인의 잘못을 너그럽게 보아넘기는 유약한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드높은 차원의 도덕적 용기이자,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지적 성찰의 결과물이다.

 

동양의 고전 서경(書經)함홍광대(含弘光大)’라 하여, 만물을 포용하고 기르는 대지의 덕성을 군자의 도리로 꼽았다.

 

또 서양의 철학자 스피노자 역시 타인을 이해하고 돕고자 하는 인간의 이성적 노력을 관대함(Generositas)’이라는 영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찰하는 인간이 도달하고자 했던 궁극의 지향점은 언제나 타인을 향한 너른 품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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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문명이 가져온 초연결 사회는 외견상 소통의 확장을 가져온 듯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극단적 자기중심주의의 벽을 고착화했다.

 

알고리즘이 짜놓은 확증 편향의 덫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정의를 무기 삼아 타인을 재단한다.

 

소셜미디어(SNS)상에서 벌어지는 무자비한 마녀사냥낙인찍기는 이미 일상이 되었다.

 

한 인간이 평생 쌓아 올린 삶의 궤적이 단 한 번의 말실수나 과거의 과오로 인해 통째로 부정당하고 만다.

 

여기에는 반성과 회복을 기다려주는 최소한의 유예기간도, 인간적 고뇌를 헤아리는 서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즉각적인 단죄와 영구적인 배제만이 군중의 도파민을 채울 뿐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불관용의 기저에 지독한 위선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타인에게는 추상(秋霜) 같은 엄격함을 요구하면서도,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진영의 허물에는 춘풍(春風) 같은 관대함을 발휘한다.

 

이른바 내로남불의 일상화다. 타인을 비난할 때는 정의의 사도인 양 행동하지만, 막상 거울 앞에 서면 자신의 부끄러운 이면을 철저히 은폐한다.

 

진정한 관대함은 엄격한 자기 성찰의 토대 위에서만 싹트는 법이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가혹한 태도는 관대함의 부재를 넘어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장 치명적인 독소다.

 

우리가 관대함을 잃어버릴 때, 공동체는 각자도생의 삭막한 황무지로 변모한다.

 

타인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구성원 모두를 방어적이고 위축되게 만든다.

 

실패가 곧 영원한 파멸을 의미하는 사회에서 창의적인 도전이나 포용적 연대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정치와 외교의 영역마저도 관용의 정신이 사라지면 오직 극단적 대립과 파국만이 남게 된다.

 

상대를 섬멸해야 할 원수로 보는 순간, 공존을 위한 생산적 대화는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멈추어 서서 스스로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가 찬성하는 가치만이 절대적인 선()이라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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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타인의 허물을 보았을 때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내 안에도 존재할지 모를 인간적 유약함과 한계를 고백하는 것이 성찰의 시작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가 남긴 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네가 그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격언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하게 복원해야 할 관용의 이정표다.

 

진정한 강자는 소리 높여 타인을 겁박하는 자가 아니라, 상대의 다름을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의 크기를 가진 사람이다.

 

성숙한 사회 역시 완벽한 인간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관대함으로 채워줄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를 가진 곳이다.

 

바람이 거세고 세상이 야박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을 향해 내어주는 작은 빈자리다.

 

거울을 보듯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물어보자. 지금 나는 타인의 숨을 틔워주는 관대함의 자리에 서 있는가, 아니면 상대를 질식시키는 불관용의 절벽 끝에 서 있는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리느냐에 따라, 우리 공동체의 미래와 우리 자신의 인간적 품격이 결정될 것이다.

 

/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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