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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연합일보] 시안 화청원(華淸園)과 비극적인 사랑의 그림자, 양귀비(楊貴妃)

  • 이창호 대표칼럼니스트 기자
  • 입력 2025.12.05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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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안의 봄을 수놓은 천상의 연못, 화청지

[한중연합일보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고대 중국의 심장이자 번영의 수도였던 장안(長安), 그 동쪽 3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여산(驪山) 자락에 자리 잡은 화청원(華淸園)은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당나라의 영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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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온천수를 이용한 황실의 휴양지였으며, 특히 당 현종(唐玄宗, 이융기) 시대에 이르러 대대적인 증축을 거쳐 화청궁(華淸宮)’ 혹은 화청지(華淸池)’로 불리며 황실의 가장 호화로운 별궁으로 거듭났다.

 

이곳은 사계절 따뜻한 온천수가 솟아나 예로부터 역대 왕조의 사랑을 받았지만, 화청원이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도 비극적인 장소로 기억되는 이유는 단연 현종과 그의 비 양귀비(楊貴妃)의 지독하고도 운명적인 사랑이 피고 진 무대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황제와 경국의 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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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청지에서의 현종과 양귀비의 나날은 당나라 역사상 가장 퇴폐적이며 낭만적인 시기로 기록된다.

 

현종은 정치를 뒤로하고 매년 겨울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봄이 올 때까지 양귀비와 함께 지냈다.

 

온천은 그들의 밀실이었고, 화청지의 맑은 물은 양귀비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씻어내는 목욕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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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거이(白居易)는 그의 불후의 명작 장한가(長恨歌)에서 이 장면을 온천수의 미끄러운 물결이 그녀의 응결된 살을 씻어내니, 비로소 시중을 들어 새 단장을 시켰네(溫泉水滑洗凝脂, 侍兒扶起嬌無力)”라고 묘사하며, 양귀비가 화청지의 해당탕(海棠湯)에서 목욕을 마친 후의 요염한 자태를 영원불멸의 이미지로 남겼다.

 

현종은 양귀비를 기쁘게 하기 위해 온 나라의 진귀한 보물과 희귀한 음식을 바쳤다.

 

특히 그녀가 좋아했던 남방의 여지(荔枝, 리치)를 신속하게 공수하기 위해 특별 수송로까지 개설했을 정도다.

 

이처럼 황제가 총애하는 여인에게 모든 것을 바치며 정사를 멀리하자, 안록산(安祿山)과 같은 간신배들이 권력을 농단하고 나라의 기강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화청원의 영화, 마외파의 비극으로 지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인 755, 마침내 안록산의 난이 발발했다. 번영하던 당나라의 수도 장안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현종은 양귀비를 포함한 황실 가족 및 소수의 호위 병력과 함께 장안을 버리고 서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 도중 마외파(馬嵬坡)라는 작은 역참에 이르렀을 때, 호위하던 군사들은 난의 근본적인 원인을 양귀비와 그녀의 친척인 양국충(楊國忠) 일가의 전횡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격분한 병사들은 양국충을 처단한 후, 현종에게 양귀비의 처형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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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인을 살리려던 현종의 간청은 굶주린 맹수와 같은 군사들의 분노 앞에 무력했다.

 

결국 현종은 뼈아픈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종은 양귀비에게 비단 끈을 하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명했다.

 

꽃다운 얼굴이 땅에 떨어져 아무도 거두지 않으니, 옥을 캐는 부삽과 쇠스랑이 그 주위에서 부러졌네(花鈿委地無人收, 翠翹金雀玉搔頭)”라는 장한가의 구절처럼, 화려함의 극치였던 화청원의 삶은 마외파에서 덧없는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스물여덟 살, 경국의 미인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으며, 그녀의 육신은 마외파의 흙 속에 묻혔다.

 

덧없는 사랑의 증거를 찾는 순례자들 안록산의 난은 비록 진압되었으나, 당나라는 이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다.

 

현종은 퇴위 후 쓸쓸한 여생을 보냈고, 그의 마음속에는 늘 화청원에서 함께했던 양귀비와의 추억이 자리 잡았다.

 

오늘날 화청원은 당 현종의 욕탕과 양귀비의 전용 욕탕(해당탕) 등의 유적과 함께, 현종이 그녀를 위해 지어주었다는 구룡탕(九龍湯) 터가 남아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이 유적들은 한때 이 땅을 뒤흔들었던 지고지순한 사랑과, 그 사랑이 낳은 거대한 비극의 역사적 증거물이다.

 

화청원은 이제 중국 역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번영과, 한 여인의 아름다움이 몰고 온 격변의 시대를 웅변하는 침묵의 증인이 되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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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시선, 호화로운 화청원의 온천수는 여전히 솟아오르지만, 그 물결 속에는 영화를 탐닉하다

 

나라를 잃을 뻔했던 황제의 탄식과, 사랑 때문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한 여인의 눈물이 스며들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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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은 "고대부터 이어져 온 한중 교류의 역사적 현장인 화청원을 관람하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그는 화청원이 단순히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유적을 넘어,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살아있는 증거임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특히 화청원의 섬세한 건축미와 자연과의 조화는 한중 양국이 공유하는 문화적 유사성의 깊이를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이 위원장은 "과거의 문화 전파가 일방적인 흐름이었다면, 이제는 수평적이고 상생하는 모델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화청원에서 느낀 아름다움과 역사적 깊이는 양국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유사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문화적 시너지를 발휘하여 동아시아 전체의 소프트 파워를 증진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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