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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연합일보] 손의 사유, 매끄러운 기계의 시대에 던지는 장인의 질문

  • 김지윤 한중문화칼럼니스트 기자
  • 입력 2025.12.2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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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처드 세넷의 ‘장인(The Craftsman)’이 말하는 노동의 소외와 실존적 회복

[한중연합일보 김지윤 한중문화칼럼니스트] 인공지능(AI)과 자동화가 인간의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현대 문명은 효율과 속도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분절해왔다.

 

기획하는 지능(Head)과 실행하는 신체(Hand)의 이혼은 현대 노동이 직면한 근본적인 소외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그의 기념비적 저작 장인(The Craftsman)을 통해 이 비극적 분리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인간 존엄의 근거로서 장인 정신을 다시 역설한다.

 

이창호의 손과 기계의 만남.png

 

머리와 손의 이혼, 분절된 인간의 비극

 

세넷은 현대 문명이 범한 가장 큰 오류를 기술(Skill)’을 지식의 하위 범주로 전락시킨 점이라고 지적한다. 고대 그리스의 장인인 데미우르고스(Demiourgos)’가 공동체의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자로서 존경받았던 것과 달리, 근대 이후 장인은 단순한 기능인으로 격하되었다. 세넷은 한병철이 지적한 매끄러운 세계의 원형을 여기에서 발견한다.

 

그는 현대의 설계 시스템인 CAD(컴퓨터 보조 설계)를 예로 든다. 화면 위에서 마우스로 그려지는 매끄러운 선에는 물질의 저항이 없다.

 

하지만 실제 흙을 만지고 벽돌을 쌓는 손은 물질의 비명과 탄성을 직접 느낀다. 세넷은 손이 단순히 뇌의 명령을 수행하는 말단 기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유하는 기관이라고 말한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뇌에 피드백을 주고, 그 피드백이 다시 손의 움직임을 수정하는 순환적 대화가 단절될 때, 인간은 자신이 만든 세계로부터 소외된다.

 

물질적 의식, 저항과 모호함을 사랑하는 법

 

장인의 작업실에서 가장 중요한 스승은 저항이다. 흙이 너무 질척거리거나 나무의 결이 어긋날 때, 장인은 화를 내며 물질을 굴복시키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저항의 원인을 탐구하며 자신의 기술을 수정한다. 세넷은 이를 물질적 의식이라 부른다.

 

현대인들은 문제가 생기면 알고리즘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리거나 오류를 제거해야 할 악()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세넷이 본 장인은 모호함과 불완전함을 껴안는 존재다. 숙련이란 수천 번의 반복을 통해 손이 물질의 성질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는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는 창조적 계기가 된다. AI가 데이터의 평균값으로 완벽함을 흉내 낼 때, 장인은 물질과의 고통스러운 씨름을 통해 오직 단 하나뿐인 불완전한 완성에 도달한다.

 

사회적 장인, 협력과 민주주의의 원형

 

세넷의 통찰은 개인의 작업실을 넘어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된다. 그는 장인 정신을 "그 자체를 위해 일을 잘 해내려는 순수한 욕구"라고 정의한다. 이 욕구는 보상이나 명성을 바라는 도구적 이성과 대척점에 있다.

 

이러한 장인 정신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발현된다. 중세의 길드나 공방(Workshop)은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고도의 기술적 대화와 협력이 일어나는 사회적 공간이었다. 장인들은 서로의 기술을 존중하면서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더 나은 결과물을 향해 나아갔다.

 

세넷은 이러한 장인들의 협력이야말로 현대 민주주의가 잃어버린 성찰적 소통의 원형이라고 보았다.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는 장인만이 타인의 노동 또한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의 시대, 왜 다시 장인인가

 

우리는 지금 프롬프트한 줄로 이미지를 생성하고 글을 쓰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과정은 거세되고 결과만 남은 이 마법 같은 기술의 시대에 세넷은 묵직한 경고를 던진다. 노동에서 과정의 고통과 신체의 수고가 소거될 때, 인간의 자존감 또한 증발한다는 사실이다.

 

장인 정신은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만지는 모든 기계와 도구에 우리의 신체적 감각을 투사하고, 그 도구들과 동반자적 관계를 맺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다.

 

프로그래머가 코드를 짤 때, 도예가가 물레를 돌릴 때, 간호사가 환자를 돌볼 때 발휘되는 그 집요하고 정직한 손의 감각이야말로 인간을 기계와 구분 짓는 최후의 영토다.

 

흙 묻은 손이 구원하는 미래

 

리처드 세넷의 장인은 노동에 관한 보고서인 동시에 인간다움에 관한 변론서다. 그는 말한다. "인간은 물건을 만들면서 자기 자신을 만든다". 우리가 물질과 부딪히며 손끝으로 익힌 그 감각들은 우리를 대지 위에 굳건히 세워주는 정신적 닻이 된다.

 

매끄러운 액정 위에서 부유하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프로세서가 아니라, 흙의 눈물을 읽어낼 줄 아는 투박한 손의 회복이다. 손은 머리보다 먼저 진실을 읽고, 그 진실은 우리가 여전히 살아있는, 피와 살을 가진 존재임을 증명한다.

 

인공지능이 세계를 정보로 파악할 때, 우리는 다시 장인의 마음으로 세계를 물성으로 껴안아야 한다. 미래의 구원은 알고리즘의 계산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도구를 손질하며, 물질과의 정직한 대화를 시작하는 장인의 굳은살 박인 손끝에 있다.

 

 글: 中 허베이미술대학교 조소,공공예술대 교수, 디자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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